커뮤니티란 무엇일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다양한 조직과 공동체를 경험하며 자랐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통해 온기와 영감을 주고받는 일은 늘 즐거웠다. 그 자리를 주선하는 사람의 역량이 커뮤니티의 분위기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서로를 부를 때 쓰는 호칭, 자기소개와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처럼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서도 기획력을 발휘해 한순간에 수평적이고 다정한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걸 보면서 나도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빠띠의 도움으로,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길 기회를 얻게 되었다. 총 6주에 걸쳐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커뮤니티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커뮤니티를 시작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세팅해놓고 구성원을 받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건강한 커뮤니티는 한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기여’와 ‘협력’을 통해 돌탑처럼 쌓아올려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커뮤니티 약속문을 정할 때도 한 사람이 문서를 작성해 일방적으로 공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위키와 댓글 기능 등을 이용하는 빠띠의 방식이 인상깊었다. 한 사람이 강한 권한을 가지고 모든 걸 통제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굉장히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커뮤니티 오거나이저로서 가졌던 부담도 조금 줄어들었다.

어렵지만 설레는

커뮤니티의 의미, 커뮤니티가 갖춰야 할 요소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3주차부터는 본격적인 커뮤니티 만들기에 들어갔다. 내가 고민 끝에 선택한 주제는 ‘학내 혐오표현’이었다.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삶과 맞닿아 있는 이슈였다. ‘동성애는 병이다’ ‘너 게이냐?’ ‘김치년’ 같은 혐오표현을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부서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 어디보다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나는 안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 빼고 모두가 웃거나 그냥 넘어가는데, 그 말들을 문제 삼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나만의 경험이 아닐 거라 믿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불편함을 나누고, 소소하지만 중요한 변화를 함께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커뮤니티를 내가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고, [혐오표현 OUT]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는 곳, 나이, 성별 등등 많은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용기를 주는 곳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채널 이름, 자기소개 양식, 커뮤니티 가이드, 커뮤니티 약속문 등을 우선 작성해야 했고, 그 다음엔 다양한 경로(오렌지레터, 서울시NPO지원센터 홈페이지, 눈랩, 유스펀치 커뮤니티)를 통해 홍보했다. 개인 SNS를 통해 홍보했더니, 많은 지인들이 응원과 공감을 보내주어서 기뻤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가입한 사람들은 꽤 되었지만,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신규 멤버가 들어왔을 때 부담없이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일지 원점으로 돌아가서 고민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pc가 아닌 모바일로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것을 고려해 커뮤니티 소개글의 분량을 줄이고, 자기소개 양식도 단순하게 바꿨다. 사용자들의 반응과 상황을 세심하게 살피며 커뮤니티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도움이 된 것은 트리 님과 현정 님의 피드백이었다. 혼자 생각할 때는 답이 없었는데, 같이 머리를 맞대면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대안이 떠올랐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을 받고 반영하기도 했다.

새로운 배움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오프라인 모임이나 세미나를 여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웠고,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참고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유스펀치, 버터나이프 크루, 일일일일일(청년기획자플랫폼) 등 매력 있는 커뮤니티가 많았다. 특히 내가 꽤 예전부터 지켜보면서 부러워했던 커뮤니티는 ‘쓰레기덕질’이었는데, 이 커뮤니티의 운영자 중 한 분이신 씽님이 감사하게도 우리 미팅에 참여해주셨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재치 있는 채널 이름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구성원 나이대는 어떻게 되는지 등 질문을 마구 던졌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형식과 틀이 별로 없어서 신기했다. 자기소개도, 커뮤니티 약속문도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6주에 걸쳐 나름 체계적으로 계획도 세우고, 잘 짜여진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쓰레기덕질의 사례를 들으니 조금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오히려 자유롭고, 정해진 것 없는 커뮤니티에 구성원들이 더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거나이저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고 세팅하려고 하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자생적으로 커뮤니티가 돌아가도록 지켜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또, 이번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빠띠가 회의하고 일하는 방식도 간접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는 ‘체크인’ 시간을 가지는 것, 돌아가면서 의견을 말하기 전에 구글문서에 미리 텍스트로 입력하며 정리할 시간을 갖는 것, 매주 모임이 끝나고 소감을 담은 ‘항해일지’를 쓰는 것 등 빠띠만의 문화가 인상깊었다. 역시 민주주의와 숙의, 토론을 위한 플랫폼을 만드는 단체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미팅을 위해 사려깊게 진행해주신 트리 님께 감사하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나도 온라인으로 회의/모임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빠띠가 하는 방식을 적용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새로운 배움들을 가득 안은 채로, 카누 인큐베이팅 워크숍은 일단 끝이다. 그렇지만, 내가 만든 커뮤니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 아직 큰 커뮤니티는 아니지만, 꾸준히 글을 올리고 홍보하며 가꿔나가려고 한다. 느슨하게 연대하는 공간이지만, 많은 사람이 따뜻함과 힘을 얻어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